좋은 의사는 실력이 있는 의사일 수 있다.
하지만 실력이 있다는 것이 곧 ‘좋은 의사’의 전부일까?
나는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의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환자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의사, 그가 바로 좋지 않은 의사일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통찰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확보한 일부 증거만으로 빠르게 확신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게 가능할 때도 있다.
인과관계가 단순한 사건, 경우의 수가 제한된 문제에서는 충분히 유효하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그런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인간은 아직도 인간의 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고,
의사들 역시 그 복잡한 세계를
공부와 임상 경험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파악하고 있다.
결국 의사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지식과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다.
그런데도 확신에 찬 진단을 내리고,
환자의 설명은 듣지도 않은 채 처방을 해버리는 경우를 마주할 때가 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누군가가 바늘에 찔리는 걸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 고통의 강도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바늘에 찔린 건 나고,
그 고통의 깊이와 특이한 감각은 나만이 느낄 수 있다.
환자는 전문가가 아니니 정확히 모른다고?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른다기보다는,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용어와 구조를 모를 뿐이다.
모든 사람은 혀가 있고, 맛을 느낀다.
하지만 그 맛을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요리 평론가’라고 부른다.
느낌은 있다. 단지 정제해서 설명하는 법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청진기가 아니라,
환자의 말을 ‘읽고’, ‘해석하고’, ‘끌어내는’ 기술까지 포함하는 것 아닐까?
의사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수많은 정황 속에서 한 가지 핵심 단서를 포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가며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 어떤 방식이든, 환자의 말은 그 퍼즐을 맞추는 중요한 조각이다.
그런데 그 말을 애초에 듣지 않는다면,
그 퍼즐은 처음부터 깨진 채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물론,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진료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의사도 ‘기계처럼’ 판단하고 처방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높은 매출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케이스의 환자들은
그저 반복되는 진료와 무의미한 처방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심하면, 생명을 위협받는다.
세상에는 사명감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이 있다.
군인, 경찰, 소방관, 간호사, 그리고 의사.
이들은 모두 일종의 ‘선서’를 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을 본질적으로 존경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환자의 말이야말로 현상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1차 증거’라는 점을 왜 간과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며 알고 있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한 감정에서 시작되었고,
나 스스로도 내 논리 안의 오류를 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은 내가 나열했던 것들에 대한 여러가지 반박을 할 것이라는 것도.
의사도 사람이고, 시스템의 일부이며, 그 현실은 복잡하다는 것.
모든 환자가 자신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래도 나는 이런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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